올레 13코스 (용수-저지)

올레 13코스, 16.4km ⓒ제주도청

벌써 8월이다. 7월 중순에 혼자 비행기를 타고 무작정 제주로 날아와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1코스를 걷기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다니. 올 땐 혼자 왔지만 제주도에 와서 많은 새로운 인연들이 생겼고, 재민이랑은 제주도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하면서 같이 걷고 있다. 오늘도 재민이랑 둘이서 13코스를 걷기로 했다. 아침을 먹고 픽업해주는 차를 타고 충혼묘지 사거리에 내렸다. 어제 용수포구에서 버스를 타러 충혼묘지 사거리까지 걸었으니까 오늘은 여기서부터.

 

용수저수지

특전사가 힘 좀 썼다는 복원된 밭길을 지나 용수저수지에 도착했다. 흐리고 찌는 날씨였는데 그래도 물가에 오니까 선선하네.

 

한가로이 낚시를 즐기는 분이 있다. 옆의 옥수수 통조림은 밑밥인가?

재민이는 낚시하는 사람을 보니 또 낚시가 하고 싶은가보다. 좀 잡으셨냐고 말도 붙이고. ㅎㅎ

 

오호. 이거 매운탕 끓이면 맛나겠다. ㅎㅎ

 

여긴 벌써 강아지풀이 노랗게 물들었네?

 

깨밭인가?

특전사들이 복원했다는 특전사 숲길을 지난다. 8코스의 해병대길도 그렇지만 13코스에도 특전사가 만들었다는 길이 둘이나. 아마 행보관이 시켰을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늬들이 고생이 많다.

 

고목숲길을 지나면서

 

간만에 도로가 나온다.

 

고사리숲길을 지나 하동숲길로

13코스 초반은 숲길의 연속이다. 숲길이라고는 하지만 곶자왈도 아니고 그렇다고 운치있는 숲길도 아니다. 좀 지루하긴 하지만, 인생에 항상 재미난 일만 있는건 아니니까 말이지. ㅎㅎ

 

벌을 치고 있다.

계속 되는 단조로운 숲길에 지쳐가고 있을 무렵...

 

행복상상가?

의자가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근처에 마을이 있나?

 

으, 음주소년 아톰? ㄷㄷㄷ

단순히 의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자마다 톡톡튀는 문구들이 적혀 있다. 이거 뭥미?

 

이 동네 이름이 앉으면 편하리인가요?

바로 옆에 낙천리라고 되어 있는데? ㅎㅎ 알고보니 여기가 낙천리 아홉굿 마을이란다. 아홉굿? 무슨 뜻이지?

 

아기공룡둘째

 

네, 넵!

앉으라니까 일단 앉았는데. 여기도 역시 구멍가게 하나 없고, 밥 때가 됐는데 식당도 없다. 아, 이런 난감할 데가. ㅡㅅ-

 

그러게나 말입니다.

근처를 지나는 분한테 물어 요 위로 조금만 올라가면 식당 비슷한 것이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식당 비슷한 것?

 

헐?! 님이 여기 대빵인가효?

아홉굿 마을 농촌체험교육농장. 우린 그 밑에 자그마하게 있는 전통음식체험이란 여섯 글자를 놓치지 않았다. +ㅅ+

 

제주올레 13코스 쉼팡 - 낙천리

각양각색의 의자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네. 제가 좀 독종입니다. ㅡㅅ-

 

저기... 그래서 밥을 먹으려면 몇 칸을 더 가야 하나요?

 

국을 데우라는 것을 보니 밥이 멀지 않은 듯!

 

보리 비빔밥! 이거 완전 맛나!

 

찬이 푸짐하다.

재민이 손은 벌써 안보인다. ㅋㅋㅋㅋㅋㅋㅋ

 

완소 흑돼지 김치찌개

이건 여기서 파는건 아니고, 여기 공사하던 아저씨들이 옆테이블에서 드시고 계셨는데 우리 재민이가...

"사장님. 혹시 남는거 없으예?"

재민아. 완전 사랑한다. 너한테 충성을 다하마. ㅜㅜ

 

이건 뭐~ 으와~ 뭐~ 와~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여기 밥 값이 참 저렴하고 푸짐하다. 13코스 걷는 분들에게 적극 추천.

 

등산화에 웬 풀이. ㅎㅎ

다리 봐라. 흑형의 포스가 느껴지는가? ㄷㄷㄷ

 

배가 부르니까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어떻게 이런 곳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 뭐 고딴게 적혀 있다.

 

일인조떼강도

 

별별 의자가 다 있다.

이런 의자들을 보고 있으면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나 하나 앉을 자리는 있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든든하게 배도 채웠으니 이제 다시 걸어볼까?

 

비운의 종아리

따블 에스 오공일이 부릅니다. 내 다리가 나빠서~

 

나중에 감귤이 익으면 알록달록 노란색이 돌겠지?

 

13코스는 낙천리부터 재미있어진다.

 

경치도 좋구요.

 

뒷동산 아리랑길

 

목장인가?

 

그리고 나타났다. 저질 저지오름.

여기쯤 오니까 좀 힘들긴 했다. 날도 습하면서 찌는 날이고. 보름째 매일 올레길을 걷고 있기도 하고. 저지오름 분화구 주변을 따라 한 바퀴 돌고, 다시 내려와 그 둘레를 반 바퀴를 돌면 내려가는 길. 저지오름이 좋긴 좋다던데. 닥나무가 많아서 닥몰오름이라고도 한단다. 저지는 닥나무의 한자 표현이라고.

 

근데 왜 이리 빙글빙글 돌게 만든거야? 돌겠구만.

 

그 와중에 매미를 잡은 재민이. ㅋㅋㅋㅋㅋㅋㅋ

 

정상에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분다.

 

정상 전망대는 공사중이었는데, 지금은 다 됐겠네.

 

자. 내려가자구.

 

빽빽하구만.

내려가다보면 작은 체육공원이 있다. 평상 비스무리한 것도 있고.

"행님. 한 숨 자고 가지예?"

그럴까? 한 삼십 분 꿀잠을 자고.

 

종착지인 저지 마을회관에 도착

저기가 훨씬 편해보이네. 저기서 잘 걸. 음료수 하나씩 마시고 게스트 하우스에 전화를 걸어 픽업을 와달라 했다. 지금 출발할테니 길 따라 천천히 걸어내려오라네? 알겠슴다. ㅎㅎ

 

아 근데 어디까지 걸어내려오라는거야?

한 20분 걷고 있는데도 올 생각을 안한다. 뭐야 이거? 다시 전화를 걸었다.

"네 거의 다 와가요."

무슨 소리야? 거기서 여기가 얼마나 된다고?

 

으잉?

조금 있으려니 저쪽에서 웬 카트 한 대가 덜덜거리면서 굴러온다. 헐? 설마?

"사장님이 안계셔서 이거 끌고 나왔어요."

 

"사장님한테 걸리면 혼나니까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이 친구 참 재미난 친구다. 대학에 떨어지고 제주도에 놀러 왔다가 여기가 마음에 들어 몇 달 째 일을 하고 있단다. 덩치는 커도 귀여운 구석도 있고 성격도 서글서글하고. 덕분에 카트 타고 시원하게 숙소까지 도착. ㅎㅎ

샤워를 마치고 빨래 돌려놓고 방에 잠깐 있으려니 새로운 사람들이 도착했다. 오늘도 바베큐 파티. 새로 만난 사람들이랑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부산에서 담배인삼공사 다닌다는 형님이랑 의기투합해서 낼은 같이 14-1코스에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