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3코스 (온평-표선)

올레 3코스, 22km ⓒ제주도청

올레 코스들 중에 두번째로 긴 3코스. 중간에 통오름과 김영갑 갤러리를 지나 표선해수욕장에서 끝나는 코스다. 김영갑 갤러리는 사진 찍는 사람이라면 꼭 가보고 싶어하는 곳일 듯. 오늘은 같이 가는 사람이 없어서 하루 종일 혼자 걸어야 할 것 같다.

 

어제와는 달라 보이는 온평포구

어제 일찌감치 들어와서 푹 쉰(?) 때문인지 오늘은 몸이 가볍다. 날씨도 어제보다 좋고. 그런데 살갗이 벌써 벗겨지기 시작한다. V에 나오는 파충류가 된 기분? ㅋ 어제 그제 알로에를 좀 바르긴 했지만 날씨가 이대로라면 고생 좀 할 듯.

 

어제 못 찍은 온평포구 사진도 좀 담아주고

올레길엔 도무지 그늘이 없다. 가끔 깊은 숲이나 곶자왈을 지날 때를 빼고는 항상 햇볕을 쬐며 걸어야 하기 때문에 챙이 넓은 모자, 소매가 긴 옷이나 썬크림은 필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간 나처럼 직접 V에 출연하게 될 수도 있다. ㅡㅅ-

 

아침부터 장난 아니네. ㅡㅅ-

오늘은 하루 종일 혼자 걷게 될 줄 알았는데 일행이 생겼다. 바닷가를 벗어나서 막 마을로 접어들었을 무렵, 먼저 걷고 계시던 남자분을 만났다.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지나가려는데 "어디서 오셨어요?"라고 물으시길래 "저는 울산요. 어디서 오셨어요?" "저는 청주에서 왔는데 원래 집은 서귀포에요." 알고 보니 청주에서 교사 임용을 준비하는 분이란다. 제주도 출신인데 올레길을 걸어본 적이 없어서 여름에 집에 온 김에 한 번 돌아보시는 중이라고.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보니 같이 걷게 되었다. 이게 올레길의 매력인가? ㅎㅎ

 

돌하르방 군락지 (읭?)

근데 3코스 초반은 진짜 지루하다. 딱히 볼 것도 없고. 혼자 걸었으면 정말 심심했을 듯.

 

전체 코스의 1/3을 걷고서야 뭔가 첨으로 볼만한 곳이 나오네.

가을이면 온통 보랏빛 꽃잎으로 덮인다는 통오름. 지금은 여름. ㅡㅅ-

 

그래도 지금도 충분히 좋다.

 

어느새 해도 구름 뒤로 숨고.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

 

오늘 하루 큰 힘이 되어준 동행

 

중산간의 멋들어진 풍경

 

여긴 가을이 되면 보랏빛 꽃들도 꽃들이지만 노랗게 물든 모습도 멋질 것 같다.

 

멋들어진 이정표

여기서 같은 숙소에 묵고 있던 모녀를 만났다. 간단히 인사를 하고 잠깐 동안 같이 걸었다.

 

중산간 도로,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한적한 길이다.

 

통오름을 내려와 중산간 도로를 건너면 야트막한 산을 하나 지난다.

이곳의 숲은 생각외로 깊은 편이다. 대낮에도 볕이 거의 들지 않아 어둠침침할 정도. 우리가 가진 지도에는 이곳을 지나 조금만 더 가면 김영갑 갤러리가 나오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걸어도 걸어도 김영갑 갤러리는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는 우리가 김영갑 갤러리를 못보고 지나친 것이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니까. 영갑이형 우릴 죽일 셈이야?

 

곧게 위로 자란 삼나무길, 김영갑 갤러리는 도대체 어디에?

 

어라? 나무를 베어 태우고 있어?

같이 걷던 동행이 설명을 해준다. 제주도에는 바람이 많아서 바람을 막는 방풍목이 많이 필요했는데 일제시대 땐가 삼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삼나무는 자라는 속도도 빠를뿐더러 곧게 위로 자라기 때문에 바람을 막는데 딱이었다고. 그런데 삼나무의 꽃가루는 독성이 심해서 봄마다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 많아서(10명에 1명 꼴이란다) 점차적으로 베어내고 다른 나무로 갈아심는 중이란다. 역시 제주도민!

 

트랙터가 지나간 자국인지 소용돌이 모양 자국이 생겼다.

 

김영갑 갤러리는? ㅡㅅ-

오늘 가장 힘든 구간은 여기였을 듯. 가도가도 김영갑 갤러리는 나오지 않고, 감귤밭만 계속. 게다가 날은 다시 개서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갤러리를 지나친 것이 아닌가 불안해 하다가 트럭을 몰고 지나가는 아주머니께 여쭤봤더니 한 30분 남았단다.

 

드디어!

점심먹을만한 곳도 마땅치 않아 쫄쫄 굶으며 걷다가 만난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지도를 어떻게 만든거야!

 

들어가 볼까?

 

오느라 욕보긴 했네유.

 

만사 귀찮은 인형? 정원에는 요런 인형들이 많다.

점심도 못먹었고 날도 더워서 그늘에 앉아 동행이 가져온 초코파이를 맛나게 먹었다.

 

갤러리 뒤에 있는 무인 찻집

물도 떨어지고, 화장실을 가려다 발견한 갤러리 건물 뒤의 무인 찻집.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놨다. 음악도 좋고.

 

네네 명심할께요.

에어컨 바람도 너무 시원하고 정수기도 있어서 생수병에 물도 채웠다.

 

쓰기도 하고, 팔기도 하는 모양

 

차가운 음료가 마시고 싶은데. ㅡㅅ-

 

아직 아무 것도 안먹었다구요. ㅡㅅ-;

 

방명록인가? 폴라로이드 사진들도 있고.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분위기가 좋아요.

 

창문엔 이쁜 그림도

1시가 넘었는데 점심먹으러 간 언니는 돌아오지 않고. 일단 갤러리부터 구경하기로 했다. 입장료는 3천원. 초코파이 얻어먹었으니 동행 입장료는 내가 계산했다. 제주도민이라 할인받아 2천원인데 그렇게 부담스러하실 것 까지는. ㅡㅅ-; 영갑형님이 찍은 사진엽서를 하나씩 준다.

 

사랑은 집요해서 해뜨기 전에 벌써 문앞에 와 있다.

 

더 많은 작품들이 있으니 꼭 직접 보는 것을 추천

작품들을 구경하고 나오는 길에 있는 영상관에서 20분 정도 다큐멘터리를 봤다. 영갑형님의 인터뷰도 있고, 병에 걸려 카메라도 들기 힘들면서도 카메라를 손질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점이 많았다.

 

생전에 쓰시던 방

 

오래 기다렸다! 감귤 쥬스!

감귤 쥬스를 마시고 조금 노닥거리다가 다시 출발.

 

시원한 소나기

갤러리를 나서서 길을 따라 조금 걷다보니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한다. 더위를 식혀주는 소나기를 맞으면서 다시 밭길로.

 

땅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사진에는 안나왔네.

다시 단조로운 길을 한참동안 걸어 일주 도로를 만났다. 레스토랑이 보이길래 늦은 점심을 돈까스로 해결하고. 돈까스가 참 튼실하게 나왔던 기억이. 지금 지도를 보니 나와 있네? 우물안 개구리 레스토랑. 우리가 갖고 있는 지도엔 없었다.

 

길을 따라 걷다 만난 바다목장. 사유지라 철조망이 쳐져 있다.

 

시원한 바다 옆에 넓은 초원이 있다.

 

말과 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 드넓은 초원

 

파도가 대단했다. 내 마음도 씻어주지 않을래?

 

뭘 그렇게 생각하세요? 같은 숙소에 묵었던 분인데 말이 통 없으셔서.

 

맛있겠다. 소고기... (응?)

 

모자란 사진 내공이 아쉬울 뿐

 

텐트치고 자면 좋을 것 같아. 사유지라 안되겠지만.

 

목장을 지나 계속되는 바닷가, 이 날 파도는 정말 예술이었다.

 

에메랄드 빛 바다

 

바다를 떠난 길은 다시 내륙으로

 

벌써 코스모스가 필 계절이 됐나?

 

다시 마을이 나오고

도로가 공사중이라서 우회해야 된다는 표지판이 나왔다. 3코스를 걸으면서 거의 처음으로 가게가 나온 듯. 쭈쭈바 하나씩 빨아주고, 담배가 떨어져서 담배를 샀다. "담배 피우셨어요? 하루 종일 안 피우시길래 담배 안피우는 분인 줄 알았어요." 저도 하루 종일 어떻게 안피우고 버텼는지 궁금합니다. ㅎ

 

둑방길을 지나

 

배고픈 다리

고픈 배처럼 다리가 쑥 꺼져 있다 해서 배고픈 다리란다. 조수간만에 따라 물에 잠기기도 하는 모양. 근데 배고파. ㅡㅅ-

 

다리 위에서 유유자적 낚시를 하시네. 뭐 좀 잡으셨어요?

 

정낭, 집에 아무도 없단다.

나무가 3개 걸려 있으면 집에 아무도 없고, 2개 걸려 있으면 조금 멀리 간거고, 1개 걸려 있으면 옆집이나 가까운 곳에 갔으니 금방 온다는 표시란다.

 

철근으로 만든 노란 난간이 참 특이하네?

조금 더 걸으니 하천마을에서 만든 쉼터가 나온다. 정자가 있는 공터. 청년회에서 만든거라는데... 제주도 청년회도 나이 많은 중년 아저씨들이 많단다. 제주도 살던 분이랑 같이 걸으니 궁금할 때마다 물어볼 수 있어서 좋다. 정자에서 잠깐 쉬고 다시 출발.

 

표선 바닷가가 보이기 시작, 이제 거의 다 왔나봐.

 

물이 빠지는 중인지 들어오는 중인지

 

아주 작은 해변이 나온다.

 

먼저 지나간 발자국이 많구나. 호젓하니 딱 좋은 느낌.

바위 위에 돗자리를 깔고 시원하게 웃통을 벗으신 아저씨가 계신다. "안녕하세요. 시원하시겠어요." "예. 너무 더워서 나왔어요. 조금만 더 걸으시면 끝이에요." "고맙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도 스스럼 없이 말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올레길. 좋구나.

 

물이 빠지면서 생긴 무늬. 구멍도 숭숭 뚫려 있다.

 

표선 해수욕장 무료 야영장

 

바닷가 구경도 좀 해주고

사진을 찍을 땐 몰랐는데 사진을 찍고 바닷가를 둘러보고 있으려니 누군가 반갑게 아는 척을 한다. 어라? 어제 본 그 외쿡 커플아냐? ㅋ (윗 사진 가운데 앉아 있는 커플) "헤이~" 라면서 둘이 나란히 손을 흔든다. "어라? 모구리 야영장에 안갔어?" "갔었는데 우리가 생각했던거랑 조금 달랐어. 그래서 여기로 왔는데 여기가 훨씬 좋네. 우리 텐트는 저쪽에 있어." (무료 야영장을 가리키며) "그렇구나. 그럼 오늘도 여기서 자는거야?" "응. 여기가 너무 좋아서 하루 더 있다 가려고. 오늘 걸으면서 좋은 구경 많이 했어?" "응. 그런대로. 오늘은 22km 걸었어." "와우~" 사람 인연이라는 것이 만나려니 또 이렇게도 만나는거구나. 좋은 시간 보내라고 서로 인사를 하면서 헤어졌다.

조금 더 걸어서 해수욕장이 끝나는 곳에 도장 찍는 곳이 있었다. 도장을 찍고 어디로 가야 버스를 탈 수 있는지 확인을 하고. 오늘 하루 종일 같이 걸으며 동고동락을 한 동행과도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됐네.

 

객주리를 말리고 있다. 쥐치를 제주도에선 객주리라고 한다.

하루 종일 같이 걸어준 동행이 고마워 저녁이라도 같이 하자 하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그냥 헤어졌다. 서로 길 반대편에서 버스를 타야 해서 덕분에 즐거웠다며 악수를 하고.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못물어봤는데. 너무 반가웠어요. 고마웠고.

한 20분을 기다려 버스를 타고 온평 초등학교에 도착. 픽업해달라고 전화를 했더니 고부장님이 "못 걸어 오겠니?" 한 4일째 걸은데다 오늘은 22km를 걸었더니 발에 물집이 제대로 잡혔고, 더 걷기도 싫었다. 기다렸다가 스타렉스를 탔는데 픽업갈 사람이 있다고 해서 성산항으로 ㄱㄱ.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엉덩이를 개한테 물린 분을 픽업하고 돌아온 시각은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사장님은 오늘도 나한테 총무를 맡기려고 했는데 내가 늦는 바람에 민수 형님이 총무를 맡았다. ㅋ

씻고 나와서 오늘도 바베큐 파티. 고양에서 가족과 함께 오신 큰 형님이 준비한 카레와 수박으로 저녁을 맛있게 해결했다. 온 가족이 함께하는 모습이 너무 좋았고, 카레도 잘 먹었습니다. 큰 아드님도 군대 잘 다녀오시고. 옛날 소주의 사카린 맛을 기억하는 당신이 술을 안마셔봤을리 없다고! 부모님 앞이라고 뻥치다가 딱 걸렸어! ㅋㅋ

오늘은 내가 둥지에서 마지막으로 묵는 날이다. 내일부터는 거지 꼴을 하고 해비치 호텔에서 묵어야 할 판. 재민이가 흔쾌히 따라나서기로 해서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다. 민수 형님은 갑자기 회사에 일이 생겨서 돌아가봐야 하신다고. 형님, 며칠 같이 안있었지만 반가웠어요. 잘 올라가시고.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오늘도 제주도의 밤은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