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들 수가 없구나

길 끝에는 바다가 있다. 도망치고 싶어도 갈 곳이 없는...

대학원 면접이 있었다. 전공 면접이 있을거라고 미리 얘기를 들었지만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았다. 난 무슨 배짱으로 어떻게든 될거라고 생각한걸까? 뭘 믿고? 조선소에서 8년째 일하고 있다는 근거없는 알량한 자신감 따위?

1학년 때 공부했던 개론 책을 어제 처음 펼쳐보니 페이지가 누렇게 바래있었고, 뭘 흘렸는지 여기저기 얼룩이 묻어 있었다. 회사에서 오후에 시간을 내어 잠깐 읽어보고, 오늘 학교 앞 공영주차장에 2시간 정도 일찍 도착해서 나머지를 잠깐 읽었다.

시간에 맞춰 대기실에 도착해보니 40여명이나 되는 지원자들이 쪽지를 외느라 정신이 없었다. 갑자기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차례를 기다리며 나가서 담배를 물었다. 긴장은 가시지 않았다.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내 차례가 되어 면접실에 들어갔다.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자 세 교수님 중에 오른쪽에 앉아 계시던 분이 질문을 하셨다. 제대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횡설수설. 교수님들 표정이 살짝 굳어졌고, 질문을 하셨던 교수님이 좀 더 알아듣기 쉽게 다른 표현을 써서 같은 질문을 다시 하셨다. 이 정도면 거의 답을 알려주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겨우 어떻게 대답을 했다.

다음 질문. 제대로 입을 뗄 수가 없었다. 횡설수설 아무 소리나 입에서 나오는대로 말을 늘어놓고 있으니(이것이 정말로 입에서 나온다고 말이 아니라는 그 소리구나) 가운데 앉은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이용진씨, 지식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자기 소개서에 읽어보니 상세설계에서 6년 반 동안 근무하면서 많은 지식을 쌓았다는데..."

6년 반 동안 쌓은 지식이 뭐냐고 묻는 소리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 질문. 가운데 교수님이 최적화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무엇인가 물어보셨다. 친절하게 보기까지 말씀해주시면서. 그런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내 생각에 맞는 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겨우 말했지만 교수님은 고개를 가로 저으셨다.

"관심 분야에 최적화라고 되어 있는데... 최적화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조곤조곤 정답을 말씀해주셨다. 그분이 바로 최적화를 담당하는 교수님이셨다.

"됐습니다. 나가보세요."

인사를 하고 나가려는 찰나에 오른쪽에 앉아 있던 교수님이 "넥타이가 비뚤어졌는데 바로 하지? 너무 긴장했나본데."

고개를 꾸벅하고 돌아나왔다. 하늘이 내려 앉는 기분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왠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나 때문에 기회를 빼앗긴 부서 선배의 모습이 떠오르고, 부서 사람들을 생각하니 무슨 얼굴로 봐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열심히 하겠다고 썼던 글과 엔지니어 운운하던 글이 부끄럽기만 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