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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9.14 올레 4코스 (표선-남원) 8
올레 4코스 (표선-남원)
올레 4코스, 23km ⓒ제주도청
오늘은 올레 코스들 중에서 가장 거리가 긴 4코스다. 아침에 둥지에서 정들었던 사람들과 작별을 하고 재민이와 함께 스타렉스에 올라 해비치 호텔에 도착. 체크인은 2시부터라 짐을 맡겨두고 바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재민이는 4코스를 먼저 걸었는데 역으로 돌다가 길을 헤매서 제대로 못걸었다고 다시 걷는단다.
4코스는 지도에서 보듯이 거의 해안을 따라 걸어가는 길이다.
이날도 해는 사정없이 내리쬐고 있었고, 조금 걷다가 이상한 소리가 나서 보니까 등산화 밑창이 입을 벌리기 시작. ㅡㅅ- 나름 4-5년 함께 하면서 지리산, 설악산 등등 수많은 산을 함께 했는데 이젠 때가 됐나보다. 걷기 영 불편해서 밑창을 뜯어 가방에 넣고 조금 걸어보니 그래도 걸을만 하더라. 그냥 걷기 시작.
저기 저게 샤인빌 리조트인가효?
근데 4코스는 정말 이렇다할 특징이라든지 볼거리가 없더라. 잘 모르고 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바닷가를 따라서 계속 걷는 내내 생뚱맞은 수산물 가공 공장들만 나오고. ㅡㅅ- 중간중간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과 이쁘장한 펜션들 조금 보고, 대부분은 재민이랑 얘기하면서 걸은 것 같다. 날이 너무 더워서 중간에 가게라도 나오면 맥주나 한 잔 하고 갈까 했지만 가게도 잘 없고. 도중에 마을을 하나 지나면서 민가에서 물을 좀 얻고, 그 앞에 나온 가게에서 쭈쭈바 하나씩 빨고 계속 걸었다.
처음 맛보는 제주도 음식? 자리 물회
걷다 보니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어 물회 간판을 보고 들어갔다. 토산 남쪽나라 횟집? 아마 중간 스탬프 찍는 곳이었던 듯. 나는 물회를 먹고 재민이는 뚝배기. 드디어 제주도 음식을 먹는다는 기대를 갖고 먹었지만 기대가 너무 커서 그런지 그렇게 맛있다는 느낌은 없었다. 감귤 막걸리도 생각보다 별로였고. 물회는 저렇게 나오면 저기에 밥을 말아서 후룩후룩 먹어주면 된다능.
재민이가 시킨 뚝배기. 별로 맛있어 보이진 않지? ㅋ
점심을 먹고 다시 내륙으로 향하기 시작. 망오름의 경치는 어떨까?
사실 별로 특이한건 없더라. ㅡㅅ-
이건 흡사 2코스와 3코스의 재방송을 보는 느낌. 데자뷰라는게 이런건가?
거슨새미 근처, 저거 정말 자그마하다. 세면대 크기만큼도 안되는 듯.
날이 너무 더웠는데 세수하기 딱 좋은 크기의 샘이 있더라. 잠깐 더위를 식히고. 거슨새미는 거꾸로 흐르는 샘이라는 뜻이란다. 대부분의 물이 한라산에서 바닷가 방향으로 흐르는데 거슨새미는 바닷가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흐른다고. 중국 황실에서 끊어버리려고 했는데 요행히 살아남은 샘들 중 하나란다.
태흥리 해변길
올레 패스포트를 사면 주는 이 지도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어차피 대략적인 코스를 표기해 놓은 지도라서 정확한걸 기대하는건 아니지만 지도에 나타난 위치에 상당히 오차가 있는 듯. 3코스 김영갑 갤러리 때도 그랬지만, 거슨새미를 지나서 조금만 가면 영천사가 나올 것 처럼 되어 있었는데 실제로는 꽤 걸어야 하더라. ㅡㅅ- 어쨌건 또 다시 2코스와 3코스의 데자뷰를 겪으면서 감귤밭을 지나 다시 바다가 보이는 태흥리로 나왔다. 발에 잡힌 물집 때문에 걷기가 꽤 힘들더라는.
번호판도 없는 신기한 차가? 제주도에는 경운기를 개조해 만든 이런 차들이 많다.
지겨운 길을 걷고 또 걸어 남원포구에 도착. 가지고 있던 지도에 따르면 4시 45분에 해비치 호텔로 가는 버스가 있다길래 이를 악물고 갔는데... 남원포구로 가는 도중에 해비치 호텔 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근데 시간은 아직 20분도 더 남았는데? 역시나, 호텔에 전화를 해보니 버스 시간이 바뀌었단다. 이 지도 너무 문제가 많은 듯. 지도도 그렇고 제주올레 홈페이지도 그렇고 업데이트가 너무 더딘 것 같다. 18-1하고 17코스가 생겼는데도 대문에 있는 지도는 여전히 16코스까지만 표시되어 있는 것도 그렇고.
어차피 셔틀 버스도 놓쳤고. 남원포구 방파제에 낚시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재민이가 구경이나 하고 가자길래 방파제에 앉았다. 잡아둔 고기는 좀 있던데, 한 30분 지켜보는 사이에 낚는 분은 한 분도 없었다. ㅡㅅ- 결국 그냥 동일주 버스 타는 곳으로.
버스를 타고 표선에 도착해서 한참을 걸어 해비치 호텔에 도착. 거지꼴로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가서 씻고 빨래를 했다. 세탁기는 당연히 없고, 세탁비는 너무 비싸서 손빨래하고 손으로 물을 짜서 베란다 난간에 널었다. 이러면 안되는거지 싶지만 촌놈들은 무서운게 없다. ㅋ
해비치 호텔은 처음인데 시설이 정말 잘되어 있고 직원들도 너무 친절해서 촌놈 둘이 눈을 똥그랗게 뜨고 감탄했다는. ㅋㅋㅋㅋㅋ 현대중공업에서 가면 14만원까지 무료 이용이 가능하다길래 우와~ 했더니 저녁 BBQ 뷔페가 한 사람에 6만원(세금 포함)이더라. 둘이 BBQ 뷔페에서 기네스 캔맥 하나씩 시켜 배터지게 먹고 나니 14만원 거의 다 썼다. ㅡㅅ- 그래도 촌놈 둘이 호강했다. 음식도 맛있었고(말고기 육회 첨 먹어봤어), 옆의 무대에서 외쿡인들이 생음악도 연주해주고.
저녁을 먹고 나와서 호텔 앞에 있는 가게에서 캔맥주를 사서 표선 해수욕장 바닷가에 앉았다. 맥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들어와서 TV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올레길 걸으면서 사진을 2,800장 가까이 찍었는데 4코스에서 찍은 사진은 달랑 16장. 4코스가 볼 것이 없는지 내가 너무 준비를 안해와서 그런건지. 어쨌거나 제주도의 5일째 밤이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