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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0.07 Steve Jobs 타계

Steve Jobs 타계

故 Steve Jobs ⓒApple Inc.

수요일에 대학원 졸업 논문 접수를 정신 없이 마치고 아이폰 4S에 대한 기사를 뒤늦게 보았다. 5가 아니고 4S라니 "김태희를 기다렸는데 마누라가 온 격"이라느니, "잡스가 없으니 애플도 끝"이라느니 뭐 그런 시시콜콜한 기사를 읽었다. 애시당초 5가 나온다해도 갈아탈 생각은 없었던터라(5가 나오면 4 가격이 떨어질테니 4로 갈아타볼까 생각은 했지만) 4S에서는 뭐가 달라졌는가를 유심히 봤는데 그닥 내 맘을 끄는 추가 기능이 없어서 나중에 4 가격이 얼마나 떨어지는지나 보기로.

어제 대학원 수업이 9시 30분에 있어 일찌감치 출발하여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컴퓨터를 켰는데... 잡스... 사망? 아이폰 4S를 발표한 다음 날이고, 8월 말에 애플 CEO를 물러난지 한 달 남짓이다. 

 

오늘 세계에서 가장 좋은 대학 중 하나에서 여러분의 졸업식을 함께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지금이 제가 대학 졸업에 가장 가까운 순간입니다. 오늘은 저의 인생에 대해 세 가지를 말하고자 합니다. 그것 뿐입니다. 대단할 것도 없는 세 가지 이야기 입니다.

점들을 연결하는 것이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저는 여섯 달 만에 리드 대학을 중퇴했지만, 정말로 그만 두기 전에 열 여덟 달 정도를 청강을 하며 머물렀습니다. 저는 왜 중퇴를 했을까요?

그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저의 생모는 젊었고, 결혼을 하지 않은 대학생이었는데 저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분은 저를 대학을 졸업한 부모에게 꼭 보내야겠다고 생각했고, 제가 태어나면 변호사 집안에 보내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태어나고보니 그 사람들은 딸을 원했던거죠. 그래서 입양을 기다리던 지금의 제 부모님이 한밤중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갑자기 입양을 보내야 할 사내 아이가 생겼는데 어떠세요?" "물론 좋죠." 저의 생모는 나중에서야 저의 어머니는 대학을 나오지 못했고, 아버지는 고등학교도 나오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몇 달 뒤에 부모님이 저를 꼭 대학에 보내겠다고 약속을 하고 나서야 마지못해 허락을 했습니다.

17년이 지나 저는 대학에 갔습니다. 한데 저는 순진하게도 거의 스탠포드 만큼 비싼 대학을 골랐습니다. 노동자 부모님이 모아둔 적금은 몽땅 제 대학 수업료로 썼습니다. 여섯 달이 지나도 저는 그럴 가치를 못 느꼈습니다.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몰랐고, 대학이 그걸 알게 해줄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부모님이 평생을 걸려 모아둔 돈을 쓰고 있었던거죠. 그래서 저는 모두 잘 될거라 믿고 대학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당시에는 꽤 겁도 났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제가 한 결정들 중에 가장 잘한 것 중 하나였습니다. 대학을 그만 둔 순간, 저는 더 이상 관심도 없는데 들어야 할 수업들을 듣지 않아도 되었으므로 재미있어 보이는 수업들을 청강하기 시작했습니다.

낭만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기숙사 방이 없어 친구들 방 바닥에서 잤고, 먹을 것을 사려고 콜라 병을 주워다 5센트를 받았으며, 일요일 밤마다 한 끼를 얻어 먹으려고 7마일이나 걸어 사원에 갔습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내 호기심과 직감을 따라 우연히 끼어들었던 많은 일들이 나중에는 값을 매길 수 없을 경험이 되었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죠.

당시 리드 대학에는 국내 최고의 서예 수업이 있었습니다. 캠퍼스 안의 모든 포스터나 서랍마다 아름다운 손글씨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중퇴를 해서 정규 과정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서예를 배워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세리프체와 산세리프체를 배웠고, 서로 다른 글자들 사이의 간격 변화를 배웠으며, 좋은 조판이란 어떤 것인가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웠고, 역사가 담겨 있었으며, 과학으로 설명하기 힘든 예술적 미묘함이 있었습니다. 대단히 매력적이었죠.

이런걸 배운다고 내 인생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년 뒤에 우리가 처음 맥을 만들 때, 그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맥에 적용했죠. 아름다운 글꼴을 가진 첫 컴퓨터였습니다. 그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맥에는 여러 가지 글꼴도 없었을거고, 글자 사이의 간격도 어색했을 겁니다. 윈도우가 맥을 베꼈으니까 아마 어떤 컴퓨터에도 그런 것은 없었을 겁니다. 제가 자퇴를 하지 않았다면 서예 수업을 듣지 않았을테고 컴퓨터에는 지금과 같은 멋진 글꼴들은 없었을 겁니다. 물론 제가 대학에 다닐 때에는 앞날을 내다보고 점들을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10년 뒤에 뒤를 돌아보니 그것은 매우, 매우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앞날을 내다보며 점들을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뒤를 돌아 봐야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그 점들이 미래에는 어떻게든 연결될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배짱, 운명, 인생, 업보, 어떤 것이든 믿어야 합니다. 저는 이런 방법에 실망해본 적이 없으며, 이것을 통해 저의 인생을 남다르게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 말씀드릴 것은 사랑과 상실입니다.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일찌감치 하고 싶은 것을 찾았습니다. 스무 살 때, 아버지 차고에서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을 시작했습니다. 우린 열심히 일했고, 둘이서 차고에서 시작한 애플은 10년 만에 4천명의 직원을 거느린 20억 달러의 회사가 되었습니다. 1년 전에 우리의 가장 뛰어난 작품인 맥을 내놓았고, 저는 서른 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해고되었습니다.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해고되다니? 글쎄요. 애플이 커지자 우리는 함께 회사를 꾸려나갈 매우 능력있는 사람을 고용했습니다. 처음 한 두 해는 모든 것이 좋았죠. 하지만 갈수록 우리의 비전은 갈라졌고, 결국에는 헤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이사회장은 그 사람 편에 섰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른 살에 나왔습니다. 그것도 매우 공개적으로 말이죠. 제 모든 삶의 초점이 사라졌고,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몇 달 동안은 정말로 뭘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제 앞의 벤쳐 사업가들을 실망시켰다고 느꼈습니다. 나에게 건네던 바톤을 떨어뜨린거죠. 데이빗 패커드와 밥 노이스를 만나 망쳐버린 것을 사과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제 안에서 천천히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제가 하는 일을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애플에서 일어난 일은 그것을 조금도 바꿔놓지 못했습니다. 저는 거절당했지만 여전히 사랑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 때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것은 저에게 무엇보다 잘 된 일이었습니다. 계속 성공해야한다는 중압감은 다시 시작한다는 홀가분함으로 바뀌었습니다. 모든 것을 틀림없이 해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제 인생의 가장 창의적인 때가 시작된거죠.

다음 5년 동안 저는 넥스트라는 회사를 만들고, 픽사라는 회사를 만들었으며, 제 아내가 된 멋진 여성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로 컴퓨터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만들기 시작했고,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되었습니다. 이런 멋진 일들이 벌어지는 가운데 애플은 넥스트를 인수했고, 저는 애플로 돌아왔으며, 우리가 넥스트에서 개발한 기술들은 애플 르네상스의 심장부가 되었습니다. 로렌과 저는 멋진 가정을 꾸렸죠.

제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다면 이런 일들도 없었을거라 확신합니다. 그것은 끔찍한 맛이 나는 약이었지만 환자에게는 필요했던 겁니다. 가끔은 인생이 당신의 뒤통수를 칩니다. 신념을 잃지 마세요. 제가 꾸준히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좋아하는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채울거고, 정말로 만족할 수 있는 길은 자기가 하는 일이 대단한 일이라고 믿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대단한 일을 하려면 그것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아보세요. 안주하지 마세요. 그것을 찾으면 마음이 알게 될 겁니다. 모든 위대한 관계가 그렇듯이, 그것은 해가 지날 수록 더욱 더 좋아집니다. 그러니까 찾을 때까지 계속 찾아보세요. 안주하지 마세요.

세 번째로 말씀드릴 것은 죽음입니다.

열 일곱살 때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매일을 마지막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성공할 것이다." 저는 감명을 받아 그 이후로 33년을 살아오면서 매일 아침 거울을 보고 자신에게 묻습니다.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하려고 하는 일을 하고 싶을까?" 아니라는 대답이 며칠 연속으로 나오면, 무언가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인생에서 무언가 큰 결정을 할 때마다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은 내가 곧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외부의 기대, 자부심, 난처함이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 마저도 죽음이라는 정말로 중요한 문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무언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의 함정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미 벌거벗었습니다. 마음가는대로 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1년쯤 전에 저는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췌장에 종양이 뚜렷이 보였습니다. 저는 췌장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의사들은 췌장암은 치료가 불가능하고, 세 달에서 여섯 달 정도 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집에 가서 주변을 정리하라고 하더군요. 그것은 죽을 준비를 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집에 가서 아이들한테 10년 동안 할 얘기를 몇 달 안에 모두 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가족들이 단추만 누르면 되게끔 모든 것을 쉽게 해두라는 뜻이었습니다. 작별을 고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 날 종일 진단서를 끼고 살았습니다. 저녁에 생검이 있어 제 목과 위, 장을 통해 내시경을 넣어 바늘로 췌장에서 종양 세포를 채취했습니다. 저는 조용하게 있었는데 그 자리에 있던 부인이 의사들이 현미경을 보면서 나지막히 외치는 것을 들었다더군요. 수술로 제거할 수 있는 아주 드문 경우의 췌장암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이것은 제가 죽음을 직면한 가장 가까운 경험이었고, 앞으로 몇십 년 동안은 그러지 않길 바랍니다. 그 때 살았기 때문에 저는 지금 여러분에게 감정을 배제한 채로 죽음의 유용함에 대해 좀 더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죽기를 바라진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고, 거기 가려고 죽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죽음은 우리 모두의 종착지입니다. 누구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순리입니다. 죽음이 삶의 가장 유일한 발명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삶을 바꿔줍니다. 오래된 것이 새로운 것을 위한 길을 내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새 것이지만 멀지않은 언젠가 여러분은 점점 낡은 것이 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극적으로 말해 미안하지만 그것이 사실입니다.

시간은 유한합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살면서 낭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대로 사는 우를 범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의견 속에 여러분 내면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도록 하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과 직감에 따르는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모든 것은 부차적인 겁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 또래 모두의 바이블이었던 전 지구 편람이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여기 멘로 파크에서 멀지 않은 곳의 스튜어드 브랜드라는 사람이 시적인 표현을 빌어 쓴 책이었습니다. 개인용 컴퓨터와 전자 출판이 있기 전인 60년대 후반이라 타자기와 가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만들었습니다. 구글이 나타나기 35년 전의 문고판 구글 같았다고나 할까요. 그것은 이상주의적이었고, 근사한 도구들과 멋진 생각들로 넘쳤습니다.

스튜어드와 그 팀은 그 전 지구 편람을 몇 차례 더 내놓았고, 나중에 마지막 호가 나왔습니다. 그 때는 70년대 중반이었고, 저는 여러분 나이였습니다. 마지막 호의 뒤 표지에는 꼭 히치하이킹을 해야 할 것 같은 이른 아침의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항상 배고파하라. 항상 바보처럼 살아라." 그것은 그들의 작별 인사였습니다. 항상 배고파하라. 항상 바보처럼 살아라. 저는 항상 그러고 싶었습니다. 이제 졸업하고 새로 시작하는 여러분에게 그것을 빌어주고 싶습니다.

항상 배고파하라. 항상 바보처럼 살아라.

대단히 감사합니다.

- 2005년 스탠포드 졸업 축사


세상엔 수 많은 대단한 사람들이 있지만, 잡스의 사망 소식은 왠지 특별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어딘지도 모를 동네의 차고에서 태어난 애플 컴퓨터와 함께 한 어린 시절의 향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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